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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 3기 (두우사)

기본정보

내용

- 있 는 곳 : 인지면 애정리 186번지 

- 크 기 : 높이 본존불 150cm 협시불 100cm
- 조성연대 : 조선조 추정
- 관 리 자 : 강현성
벌판에 서있던 마을 미륵에서 사찰미륵으로 변신한 예이다.
두우사는 애정리 서쪽 부석면 월계리로 넘어가는 길가에 있으
며 미륵불은 두우사의 본존과 협시불로 모셔져 있다. 원통형 화
강암에 전면만 조각되었으며 본존불은 시무외 여원인형 수인을
하고 있다. 본존불은 몸에 비하여 얼굴이 크게 표현되었으며 목
이 짧아 웅크린 자세이다.
의습은 우견편단한 듯 주름이 약간 남아있으며 이마에 백호공
이 있고 목에는 삼도가 있다. 얼굴에 눈썹, 수염 등을 그려 넣
어 부처의 특색인 인자함보다는 근엄한 표정이 되었다. 협시불
은 목이 길고 늘씬하여 본존불과 대조를 이룬다.
조각솜씨는 매우 거칠고 전면만 하였으며 머리는 민머리이나 검
은색으로 또 얼굴은 노란색으로 칠하여 거친 부분을 메웠다. 서
산에서 유일하게 3존불 형식으로 되었으며 협시불은 청광(靑光)
보살과 신광(神光)보살을 상징한 것 같다.
이 미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첫째는 부석
면 월계리에 사는 박서방이 해변에 떠밀려있는 것을 지고 가다
가 무거워 이곳에서 쉬어가려고 지게를 바쳐놓았다가 다시 지려
고 하였으나 발이 떨어지지 않아 그대로 이곳에 모셨다는 설이
있고, 둘째는 월계리에 사는 박경진씨가 1760년에 가야산에 오르
다가 이 미륵을 발견하고 마을에 모시고자 칡넝쿨로 멜빵을 만들
어지고 월계리로 가다가 이곳에서 쉬었는데 다시 지고 가려하니
발이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두어라”고 미륵이 말하므로 이곳
에 그대로 모셨다는 설화이다.
이때 미륵불은 현 법당 좌측의 야외 은행나무 옆 맨땅에 모셨는
데 퍽 영험하여 자식 없는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어 자손을 보
았으며 수명 장수하였다고 한다. 그후 1780년에 암자를 짓고 이
름을 미륵이 말한 대로 “두어 절” 이라고 했다.
현 관리자의 조부인 강창조씨는 1940년경 공주에서 이곳으로 이
사했는데 당시 이곳에는 백암이라는 승려가 살았다고 한다. 그
후 1952년경에 제당을 보수하였다가 1989년에 헐어내고 현재의
법당을 지었다. 따라서 이 미륵의 조성연대는 240년 전으로 볼
수 있다. 절 이름과 관련하여 처음에 “두어절”→“두어사”→
“두우사”가 되었다는 설과 애정리 마을 뒤편에 있다하여 “뒷
절”→“두애절”→“두우사”(한문으로 표기하기 위하여)가 되
었다는 설이 있다.
강창조씨는 이곳에 이사 오기 전 공주 마곡사에서 불경공부를
착실히 하였으며 불교대학도 나오고 불교개혁론도 썼다고 하며
아들 강규천씨와 손자 강현성씨 3대가 불교신자로서 연이어 두우
사를 지키고 있다. 이 미륵은 영험하여 신자가 많아 마을미륵이
었다가 절 미륵이 된 예이다.
한편 이곳 밭에서는 지금도 옛날 기와조각이 나오는 것으로 보
아 절터였을 것으로도 추측되고 있다. 신도들은 애정리와 월계
리 분들이 많고 평소에는 아들이 없는 사람, 49제를 올리는 사람
들이 많다고 하며 미륵을 위한 특별한 의식은 없고 일반 사찰처
럼 석탄일 등에 불공을 드린다고 한다.
이 미륵의 형태는 사실적인 표현보다 추상적인 면이 강하여 조
성연대를 조선조로 보며 초기에는 야외에 서있었다는 점에서 마
을주민 전체가 기원하는 마을미륵으로 출발하였으나 현재는 사찰
과 함께 사유화되었다. 이상 연혁은 현주지 강현성 (법명 眞余

文)씨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