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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 (연화리)

기본정보

내용

- 있 는 곳 : 지곡면 연화리 산45번지 

- 크 기 : 높이 195cm 넓이 79cm
- 조성연대 : 고려시대
지곡면 산성리에서 연화리를 거쳐 팔봉면 대황리로 넘어가는 길
가 마을 서쪽에 서있으며 이곳 이름이 미럭굴(彌勤谷)이다. 지금
은 아래편에 신작로가 다시 개설되어 이용하는 사람이 적지만 전
에는 팔봉 대황리 뱅길이장, 팔봉초등학교, 태안 방면을 오가는
사람으로 퍽 붐비는 길이었다고 한다.
이 미륵은 전체적으로 퍽 풍만하며 얼굴은 파손이 심하여 눈,
코, 입 등이 형태만 남았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눈이 튀어나온
점이 특이하며 이마에 백호공이 있고 목이 없이 가슴과 맞닿았으
며 3도의 표시가 남아 있다. 오른손은 가슴에 왼손은 배에 부치
고 대의는 통견인 듯 희미하게 선형이 보인다. 하복부이하 매몰
된 부분이 많아 전체의 크기는 3미터는 됨직하다.
다음은 이 마을 개발위원인 김종락씨(71세)와 방주용씨(69세)
의 미륵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미륵은 퍽 영험하다는 소문이 나있으며 말 탄 사람이 그냥
지나치면 말발굽이 떨어지지 않아 꼭 내려서 합장 배례하고 지나
갔다고 한다.
이 마을에 살던 박모 할머니는 맹인이지만 미륵을 극진히 모셨
고 점을 잘 쳤다. 마을 주민들은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할머니를 찾아가 미륵에게 빌면 해결이 되고 점도 잘 맞아 이 미
륵이 영험하다는 소문이 점차 널리 퍼져 경향각지에서 많은 사람
이 몰려들었으며 할머니는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나 이 돈을 작은아들에게 많이 주고 큰아들에게 적게 주었
던지 큰아들이 편애한다고 하여 어느 날 미륵을 쓰러뜨리고 얼굴
을 마구 쪼아 많은 상처를 냈다. 이 일이 있은 후 큰아들은 시름
시름 알아 눕게 되자 후회하고 미륵을 다시 세웠는데 방향을 잘
몰라 좌향이 바뀌었다. 원래 방향은 망일산을 바라보았다고 한
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 미륵의 기가 너무 쌔서 천기누설을 많이 한
다하여 하나님이 어느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 미륵
에 벼락을 때렸다. 그래서 머리부분 한쪽이 떨어져 나갔으며 그
후 영험함을 잃었다고 믿고 있다.
또 한 분 연모 씨의 어머니는 이 미륵의 영험함을 듣고 맞은편
에 사는 김씨 집에 가족을 데리고 이사를 왔다. 매일 미륵불에
기원하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대신 기원을 해주면서 살았다. 그러
나 영험이 없어져서 그런지 찾아오는 사람도 줄고 그것만으로는
가족의 생계가 어려워 당진으로 이사갔다가 다시 안양으로 이사
했다. 이사한 후에도 매년 봄가을에 꼭 찾아와서 공양하고 기원
을 드렸는데 1999년부터는 오지 않는다고 한다. 연로하여 사망
한 것 같다는 이야기이다.
현재도 서울 인천 등 타지방에서 많이 찾아와 기원을 드리는데
이분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꿈에 영험하다고 현몽하여 왔다는
대답이라고 하다. 또 위 두 할머니들이 활동할 때 왔던 분들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