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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 (반양리)

기본정보

내용

- 있 는 곳 : 해미면 반양리 미륵사 

- 크 기 : 높이 250m 폭 56m
- 조성연대 : 미상
들에 세워진 마을 미륵이었다가 초가집으로, 스레트집으로, 현
재는 화려한 사찰 속에 들어간 미륵이다.
현재 있는 곳은 서산 해미간 국도에서 반양 초등학교 들어가는
길가 미륵사의 용화전 안에 안치도어 있다.
이 미륵은 보관을 쓰고 이마에 백호공이 있으며 얼굴이 긴 편이
다. 근엄한 표정이며 대의는 어깨 부분에서는 잘 확인이 안되나
무릎 이하의 형식으로는 통견인 듯하고 수인은 왼손을 가슴에 대
고 오른손을 내려서 무릎 근처까지 왔다. 부처의 32상중에 팔이
무릎까지 닿는다고 했는데 그 뜻으로 길게 조각한 것 같다.
당초에는 황성순씨댁 마당가 맨땅에 서있었으나 비바람에 시달
리는 것이 안타까워 조그만 초가집을 지어 모셨으며 마을에서는
매년 호당 짚 풀 한 뭇씩을 추념하여 지붕을 해 일었다. 그러나
초가집 속에 모셔지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기억하는 사람
이 없을 정도로 오래됐다.
1973년경 새마을사업으로 지붕개량이 시작되면서 도로변에 초가
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시멘트를 지원 받아 부럭벽돌을 만들어
비좁았지만 불사를 짓고 스레트로 지붕을 개량했다.
이 지역이 29호선 국도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네거리로서 주막
도 여러 개가 있었다는 점으로 보아 당초에는 마을 가운데 세웠
던 것이며 주민 협동으로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한편 미륵이
있던 집의 딸이 출가 후 불교에 입문하여 이곳이 사찰지일 것으
로 믿고 문화재 전문위원인 신영훈을 초청하여 살펴본 바 백제시
대의 사찰지일 것이라는 말을 듣고 1997년에 조계종 제7교구 수
덕사의 말사로 등록을 마치고 사찰의 복원 작업을 위하여 친정
집을 헐어내고 절을 짓기 시작한지 3년 만인 2000년 초에 완공하
여 미륵사라 이름지었다.
새로 지어 화려한 미륵사 안에는 금빛 찬란한 새 미륵삼존상을
중앙에 배치하고 돌미륵은 동쪽에 별도로 세워 놓았다. 위치도
바뀌었는데 자리를 바꾸면 좋지 않다는 말에 따라 앞으로 본래
있던 자리에 불사를 짓고 옮길 계획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500여 미터쯤 되는 곳에 정해현(貞海縣)의
현청터와 유적이 남아 있으며 그 뒷산에는 백제시대 쌓은 것으
로 보이는 반양산성 터가 있다. 그래서 이곳을 구 해미라고 불리
고 있으며 현청에 들어가는 진입로여서 혹 관아와 관련된 사찰이
나 시설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마을에는 독특하고 역사 깊은 제의(祭儀)가 전승되고 있다.
상당신제(上堂神祭)와 하당신(下堂神)제로서 옛날에는 많이 있었
으나 운산면 수당리와 이곳만 남고 다 사라졌으며 상당신제만 해
미면 대곡리, 운산면 고풍리, 인지면 차리 등 몇 마을이 명맥을
유지하고 잇다.
제의는 음력 정월 초에 각 가정에서 쌀 한 두 되씩 출연하여 도
가에서 시루떡을 찌고 포, 과일 등을 마련하고 부정 없는 사람 5
~7명을 선정하여 음력 정월 14일 당산에 있는 산제당에서 제를
올리고 내려와서 미륵불 앞에서 하당신제를 지냈다. 절차는 전통
식으로 하고 가정의 숫자대로 소지를 올리고 명태를 타래실로 감
아 미륵의 목에 걸고 백지로 미륵의 하반신을 덮는다. 비가 오려
고 하면 미륵에서 땀이 나서 이 백지가 젖었다고 한다.
제가 끝나면 시루떡을 각 가정마다 나눠먹었다. 그러나 참여자
가 줄어 80년대부터는 마을 재산의 이자로 제수를 마련하며 제관
도 3명으로 줄이고 떡도 참여한 사람끼리 나눠 먹는다.
2,000년도 제의는 사찰과 협조하여 불당 내에서 불교 식으로 올
렸다. 그 동안 전통의식의 공양을 받다가 오래간만에 불교 본연
의 공양을 받은 셈이다.
마을미륵이 사찰미륵으로 변신하였지만 마을 공동제의는 사찰
과 협조하여 계속할 계획이라는 이장의 말이다. 그러나 개인의
기원은 불당까지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과 이목 때문에 전과 같

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