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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대곡리)

기본정보

내용

 

- 있 는 곳 : 해미면 대곡리 송덕암 

- 크 기 : 높이 170cm 폭 80cm 두께 35cm
- 조성연대 : 조선조 추정
송덕암은 해미에서 덕산으로 넘어가는 45번 국도 변에 있으며
약사전의 본존불로 모시고 있다. 전에는 이 마을의 많은 가옥들
이 현재의 저수지 안에 있었으나 수몰로 인하여 민가가 대부분
이사함에 따라 송덕암만 동떨어져 있다.
네모난 화강암 석주에 전면만 조각하였고 조각 솜씨가 아주 거
칠어 얼굴은 윤곽만 나타낼 정도였으며 훼손이 심하였다고 한다.
나발에 육괴가 있으며 이마에 백호공이 있고 오른손은 시무외인
을 왼손은 그대로 내렸다. 목에는 삼도가 없고 얼굴은 긴 편이
며 의습은 통견이다. 훼손되었던 곳을 시멘트로 복원하고 도색
을 하였다고 하며 얼른 보면 깨끗하게 잘 보존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이 때문이다.
처음 이 미륵의 발견경위는 1785년(정조9)에 영조 때 승지를 지
낸 임사하(任師夏)가 행로차 이곳을 지나는데 갑자기 말이 가지
를 못하였다. 내려서 주변을 살펴보니 근처 풀밭 속에 “미륵여
래존상”이 넘어져 있어 합장 예배하고 나서야 갈 수 있었다.
그 후 임승지는 영험하게 여겨 이곳에 있던 암자를 중수하여 미
륵불을 모시고 약사전이라 했다는 사적기의 기록이다. 이 연대
는 현재의 약사 전을 개수할 때 먼저 있던 암자의 상량 보에 기
록되었던 것과 보관된 당시의 현판에 “약사전 창운중수(藥師殿
昌雲重修)”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주지는 창운이고 임승지는
중수비용을 부담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적기에서는 미륵여래존상이라 하고 암자는 왜 약사전이라 했
을까. 본래 있던 암자가 약사전이라면 별도로 지어 미륵전이나
용화전으로 했어야 하지 않을까. 또 본래 있던 부처는 어디 갔는
지가 의문이다.
한편 이 미륵불의 상처는 임승지가 발견하기 전에 입은 것으로
보인다. 암자에 모신 후에는 상처를 입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
다. 따라서 실제 조성연대는 적어도 1600년대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임승지의 기록을 1637년(인조15)으로 된 곳이 있는데 연대
가 맞지 않는다. 왕조실록에 보면 임승지가 벼슬길에 오른 기록
이 1743년(영조19)이며 지평을 거쳐 1758(영조34)에 승지로 임명
되고 1760년에 벼슬길을 떠난다. 따라서 1637년은 출생 이전이
다.
현재의 주지는 고동우(高東佑:法名)로서 23년 전에 왔으며 그
이전에는 보살들이 있었는데 웬일인지 1년을 견디지 못하고 자
주 바뀌었다고 하며 이런 상황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음
은 고주지가 알고 있는 그 동안의 영험사례이다.
산수리에 사는 김 모씨는 딸을 5명이나 두고 아들을 두지 못하
여 부인을 몹시 구박하였다. 부인이 쌀 한 되를 가지고 이 절에
불공을 드리러 찾아온바 보살은 쌀자루를 들었다 놨다하며 화를
냈다. 공양물이 적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도 구박을 당
하였지만 부인은 가까스로 불당에 들어가 정성껏 빌었더니 그 날
밤 미륵불이 갓을 쓰고 나타나 가슴을 눌러 주는 꿈을 꾸고 임신
하여 아들을 낳았다.
대곡리 김 모씨는 어머니가 알아 누워 백방으로 약을 썼으나 효
과가 없어 이곳 미륵에게 기원하러 왔는데 부처 앞에 깔려있는
자리가 말려 있었다. 얌전히 펴놓고 공양을 위한 약수를 떠가지
고 오면 또 말려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기 여러 날 후 꿈에 미
륵이 나타나 약방문을 주어 그 처방대로 약을 지어 치료하니 병
이 나았다.
해미 시내에서 사는 젊은 사람들 셋이서 이 절을 찾아왔다. 미
륵불에 절을 하자는 제의에 한사람이 이게 무슨 부처냐고 오줌
을 누었고 한사람은 돌아서서 엉덩이로 절하는 시늉을 했다. 그
런데 오줌을 눈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고 엉덩이로 절을 한사람
은 기지사경이 되어 집에 실려 갔으나 일주일만에 죽었다. 한사
람은 현재 해미에서 거주한다고 한다.
약사암 아래 도로변에서는 온천수가 흘러 겨울에도 얼지 않았
다. 이 물로 씻으면 병이 났는다하여 많은 환자들이 몰렸는데
그 중에는 나환자가 많아 마을 주민들이 물구멍을 폐쇄한 일이
있다. 이곳을 “음치마을 음치미륵”하는데 이 온천과 관련된 말
이 아닌가 싶다. 그후 이 마을은 수몰되는데 미륵 님이 주신 온
천의 혜택을 거부한 때문이 아닐까?
현재의 주지는 문제점 있던 이 조그만 암자를 확장하고 잘 가꾸
어 놓았으며 역학(易學)에도 능하여 신앙 상담도 열심히 하여 많

은 신도들이 몰려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