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메뉴 닫기
서브페이지 배경

석남동 미륵 (문화재자료 203호)

기본정보

내용

- 있 는 곳 : 석남1통 마을 

- 크 기 : 높이 320cm
- 조성연대 : 고려시대 추정
들에 서있는 미륵 중 때맞춰 공양을 받고 있는 것이 3기가 있는
데 그 중 1기이다.
석주형 화강암을 다듬어 만든 것으로 훼손이 심하여 얼굴 모습
을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며 얼굴이 유난히 길고 머리에는 보
관을 쓴 듯 네모졌다. 눈, 코, 입 등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고
목에는 삼도가 있었던 듯 현재는 두 줄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수인은 왼손을 가슴에 오른손은 왼손의 팔목부위에 포개졌으나
손가락 부위가 파손되었다.
신체의 균형상 다리부분이 많이 땅속에 묻힌 듯하며 주변 정비
차 1미터 정도 파도 끝이 안보였다고 한다. 좁은 어깨, 짧은
목, 휘청한 몸매 등 보기에 불편스런 자세이다. 신체 각 부분이
많이 파손되어 정상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미륵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소탐산(상수도 수원지가 있는 곳)밑에 인색한 부자영감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탁발승이 와서 시주를 요청하자 이를 거
절함은 물론 바릿대에 마침 외양간을 치우고 있던 중이라 쇠똥
한 삽을 떠 넣었다. 그러나 스님은 말없이 돌아가는데 착한 며느
리가 이 광경을 보고 시아버지 몰래 쌀 한 되를 시주하니 이를
고맙게 여긴 스님은 며느리에게 “지금부터 무조건 서쪽으로 뛰
어가되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도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당부
하고 사라졌다.
며느리는 짜던 베틀을 이고 서쪽으로 한참 달려가는데 뒤에서
천둥벼락 치는 소리가 났다. 집이 궁금하여 뒤돌아보는 순간 며
느리는 그곳에 돌미륵으로 굳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까지 이 미륵의 머리 위에는 갓처럼 넓은 돌이 얹어 있었다고 한
다.
그후 이 마을에 돌림병이 번져 많은 사람이 죽었다. 어느 날 지
나가던 스님이 주민에게 “이 미륵에게 정성껏 치성을 드리면 액
운이 가실 것”이라는 말에 마을에서 정성껏 제를 지내니 병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또 풍수설과 관련하여 옥녀봉의 정기가 바다 쪽을 향하여 내려
가다가 뭉친 꼭지점에 미륵을 모셔서 영험하다고 믿어 최근까지
시내에 사는 유지 한 분이 매년 치성을 드렸다고 하며 운명할 때
까지 집안이 잘되고 천수를 누렸다고 한다.(유백희 증언 당67세)
다음은 1927년 판 서산군지에 실린 내용이다.
“석남리 들에 돌미륵 2기가 있는데 1923년에 이장 임봉순의 꿈
에 두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우리는 이 마을에 미륵인데 집을
한 칸 지어 덮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장이 이에 불응했는데 그
해 장질부사가 번져 동리 사람이 30여명이 죽었다. 이것이 미륵
의 청을 거절한 탓이라는 설이 있으나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내용으로 보아 1927년대까지 2기가 있었던 것 같다.
이 마을에서는 옛날부터 동제를 지내다가 중단되었다는 설에 따
라 1998년도에 이를 부활시켜 매년 음력 정월 15일 미륵에 동제

를 지낸다.